밤벌을 아시나요?
밤나무가 수십 그루 자라는 널찍한 들판을 일컫는 말이지요.
어렸을 적 밤벌 근처에 살았습니다.
가을이 되면 밤이 영글고
밤이 영글면 밤송이는 스스로 벌어져
알밤을 땅바닥으로 쏟아 냅니다.
여동생과 나는 새벽에 일어나
밤벌로 알밤을 주우러 가곤 했습니다.
어제 낮에 보아 둔 아람 벌어진 나무 아래를
동네 아이들보다 먼저 차지하려면
졸린 눈을 부릅떠야 합니다.
날이 채 새지 않은 동구밖 오솔길로
종댕이를 차고 달렸지요.
오솔길에는 늘 안개가 자욱했고요.
새벽 이슬의 촉촉한 감촉이 덜 깨인 잠을 쫓아버리곤 했지요.
풀섶아래 여기저기 떨어져 있는
탐스런 알밤을 줏는 재미에 비하면
이따끔씩 밤 가시에 찔리는 아픔 쯤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오늘도 그 때 처럼
장수천 물가에 안개가 자욱합니다.
코스모스 꽃잎에는 이슬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렸구요.
관모산 아래 초록 들판에는
찬란한 가을 햇살이 번집니다.
추석이 며칠 뒤로 다가왔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밤벌에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알밤 줍는 재미를 아이들이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고향마을의 옛집은
어머니 돌아가신 25년째 빈집으로 허물어져 가고
백여년 건재했던 밤벌도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고향마을의 밤벌아래 오솔길이
몹시도 그리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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