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너랑 나랑>이란 말이생각 난다.
어렸을 적엔 걸핏하면 친구들에게 썼었던 말인데
요즘엔 여간해선 쓰지 않는 말이다.
단둘이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어른스럽지 않은 말이기도 해서 그런 것 같다.
<사랑>도 <랑>자가 포함된 좋은 말이다.
사랑, 사랑해...이런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할까?
나는 왜 이 말에 가식이나 간지러움 같은 느낌이 포함돼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말을 나는 <연인이 된 남녀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말>이라고
어렸을 적에 단정지었던 것 같다.
자애하다. 어여삐여기다. 측은하게 생각하다. 좋아하다...
뭐 그런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더 많은데 나는
연애하다.
특별한 감정으로 널 좋아하다.
그런 의미로 내 머릿속에 각인한 것 같다.
<사랑한다>고 선뜻 말 할 수 없는 이유다.
가식이나 간지러움을 느낀다는 것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별히 좋아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니
<사랑한다>고 가볍게 말하는 이를 보면
뭔가 가식적이라고 느끼게 되는 거 겠지.
그러나 요즘엔 나도 생각이 쬐금 바뀌었다.
가족들에게 만큼은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야 한다.
내 아내와 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하거니와
<무뚝뚝한 아버지>가 되느니
<가볍고 간지러운 아빠>가 되자고 애시당초 맘을 고쳐먹었기 때문이다.
<아리랑>이라는 전통민요에서도 <랑>자는
독특한 매력을 더한다.
아리꽝 아리캉 아리멍 아리장...
뭐 좀 어색하지 않은가?
국어에 <ㄹ>음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일본말 히라가나 가다가나에는 <ㄹ>발음이 없다.
그래서 일본사람들은 항상 혀가 짧다는 평판을 듣고 살았다.
아리랑에 포함된 두개의 <ㄹ>자는
우리 말의 우수성을 단적으로 드러낸 지표라고나 할까.
특히 <랑>은 혀를 굴리기 쉬운 말로
다른 글자 뒤에 붙여 쓰면 그 느낌이 새로워 진다.
결혼한 여자들이 자주 쓰는 <신랑>이라는 말도
정겨운 단어 가운데 하나다.
<우리 신랑은요...>
이런 말이 동원되는 대화를 조근조근 들어보면
<우리 집에는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있는데
그 남편이란 작자가 이러저러할 때는 몹시 밉고 망측하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신랑을 험 잡으면서도 은근한 자랑이 섞여 있다.
나는 부부간의 이런 감정을 사랑하는 마음의 으뜸이라고 생각한다.
좋고 싫은 감정을 단계적으로 표현하면
치가 떨릴정도로 싫다.(증오한다)
몹시 싫다.
싫어한다.
안 좋아한다.
좋아한다.
아주 좋아한다.
사랑한다.(존경한다)
사랑하지만 밉기도 하다.
<사랑하지만 밉기도 하다>는 감정은
부부가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여기서 미운 감정이 사랑하는 감정을 억누를 정도만 아니라면
부부는 분명 <금슬좋은 부부>일 꺼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억누를 정도로 미워하는 감정이 넘치기 전에
부부는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야 한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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