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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일기

110107 취객소동

이상한 소리에 새벽 잠이 깼다.
누군가 문을 열려고 자물쇠 버튼을 누르고 있다.
삑삑 소리가 거듭해서 난다.
이 새벽에 우리집에 찾아 올 사람이 있던가?
때로는 문발치를 발로 툭툭 걷어차기도 한다.
"누구세요?"
"...."

잠시 후, 문이 또 삑삑거린다.
아무래도 취객인 거 같다.
인터폰을 켰다.
"누구십니까?"
"예, 죄송합니다."
인터폰 화면에 잡힌 젊은 남자.
30대 중반쯤 되었을까. 술이 잔뜩 취했다.
지금 시각 5시20분...
어디선가 여태껏 술을 마셨다면
저렇게 취할 만도 하지.
"누구신데 이 시간에 남의집 문을 두드리는 거요?"
"예, 죄송합니다..."
어디론가 뚜벅대며 가는 소리가 난다.
"에이 씨, 어쩌라는 거야?"
작은 방 창 넘어로 투덜대는 소리가 얼핏 들렸다.
이제 제 집을 찾아가겠지.

누군가가 움직이면 켜지는 복도등이 잠시 후 또 켜졌다.
"쾅쾅쾅쾅..."
이번엔 딸들도 놀라서 깼다.
"*&%*%#아!, 문 열어!"
혀꼬부라진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면서
또 문발치를 찬다.
"쾅 쾅 쾅..."

"경비실이죠? 여기 103동인데요.
어떤 사람이 술먹고 와서..."
"네, 경비반장님하고 경찰하고 같이 올라 갑니다. 조금만 더 참아 주세요."
옆집에서 신고를 했는지
경비실에서는 이미 사태를 잘 파악하고 있었다.
복도에서는 취객이 여전히 오락가락 한다.

복도등이 켜졌다 꺼졌다를 반복하는 동안
인터폰을 다시 들었다.
"여보슈!"
"......."
"여보슈!"
"죄송합니다."
취객이 인터폰 카메라 앞에서 휘청거린다.
"문좀 열어주세요, 아부지!"
"여긴 103동인데, 집 잘못 찾은 거 아니요?"
"......"
"몇 동에 사시요?"
"106동인데..."
"그럼 요 옆에 동이네. 빨리 집으로 가슈, 경찰 올 지 몰라요."
"경찰이요? 어이쿠 이거 클났다."
경찰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드는 듯
발자국 소리가 엘리베이터 쪽으로 촘촘히 사라졌다.

복도등이 꺼지고
103동은 평온을 되찾았다.
20여 분에 걸친 취객 소동이 끝난 것이다.
출근하면서 경비실에 물어 봐야지.
106동 젊은 아저씨 무사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