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일기를 쓴 날은 1977년 8월1일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막 시작되었을 때 였지요.
그로부터 33년5개월.
해마다 한 두 권씩 쌓인 일기장이 얼추 30여권쯤 됩니다.
1994년에 인천으로 이사오면서
여행가방에 따로 보관하기 시작했지요.
제 소중한 역사이니까요.
마침 며칠동안 여유가 생겼길래 일기장이 보관된 가방을
장롱 위에서 꺼냈습니다.
먼지가 뽀얗게 앉았구요.
가방이 여기저기 녹이 쓸었습니다.
지퍼에도 곰팡이가 앉아서 잘 열리지 않고요.
가장 오래된 것 부터 찬찬히 들춰 봅니다.
제 과거사도 되돌아보고
올해 안에 출간하기로 한 개인 문집의 글감도 찾을 겸 해서 말입니다.
유치하고 낯 부끄러운 기록들도 있지만
슬그머니 웃음이 나는 기록들이 제법 많네요.
"그땐 그랬었나?"
"이 건 좀 모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스스로 기록한 제 주변의 역사라서 그런지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자기 고백체로 씌여진 일기글이 대부분이지만
띄엄띄엄 습작 소설도 보이구요.
시나 편지글로 씌여진 것도 있네요.
아무튼 제가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만한
기록 가운데 하납니다.
특히 2000년 4월 27일에 기록한
<나의 40년 삶과 꿈>이라는 글에는
제 40년 이력이 촘촘하게 약술돼 있습니다.
언제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어느 날 고등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직장에 다녔고
어느 친구들과 무슨 추억을 만들었는지 등등...
제 주변에서 일어난 작은 역사가
짧막하고도 촘촘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기장들을
어찌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초창기의 일기장, 그러니까 20대에 쓴 것들은
언젠가 베란다에서 장마를 견디면서 잔뜩 물기를 품었던 적이 있는데
글씨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곰팡이가 잔뜩 끼었거든요.
문제는 그것 뿐만이 아닙니다.
지금의 아내가 보면
민망하기 이를데 없는 연애편지 같은 것도 있거든요.
그래도 죽을 때까지 보관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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