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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문 일기

101024 춘천마라톤 D-0


송내역에서 6시1분에 용산행 급행 전철을 탔다.
열차는 순조롭게 잘 달렸다.
노량진에 내려서 완행 전철로 갈아탈 때까지
7시2분발 남춘천행 열차를 청량리 역에서
못 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넉넉한 시간은 아니지만 5분 정도 여유가 있겠다 싶었다.
예상은 빗나갔다.
전철은 서울역에 진입하면서 2분 대기.
종각역에 접근 하면서 2분 찔끔찔끔...
노심초사하기 시작했다.
초시계를 눌러 놓고 정거장마다 경유시간을 재본다.
종로3가에서 문 여닫는 시간 25초.
동대문에 도착해서 다시 문 열때까지 1분 50초.
청량리 지하역에 도착했을 땐 이미 7시2분.
남춘천행 열차가 출발하기로 한 시각이다.
전철에서 내리지 않았다.
지하역에 내려 청량리 민자역까지 뛰어 가는데
적어도 1분30초는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청량리역을 빠져나가던 전철이 지하 출구에 멈춰섰다.
"경춘선 열차 개통 관계로 잠시 정차하겠습니다."
때마침 출발한 남춘천행 열차가
저만치 앞질러 회기역으로 가고 있다.
저 차를 탔으면
편안하게 앉아서 휴식을 취하며  춘천에 갈 수 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고 약오르는 일이다.
집에서 꾸물거린 5분 때문에
또 경춘선 열차를 청량리역에서 놓치다니...
도대체 똑같은 실수를 몇번이나 반복하는 건가?
충분하게 시간을 갖고 출발하지 못한 나에게
몹시 화가 났다.
올해 춘천마라톤은 유난히도 나를 시험하는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회기역에서 양평으로 가는 중앙선 전철로 갈아타야 하고
도농역에서 내려 청평행 버스를 타야한다.
그리고 청평에서 춘천행 직행 버스로
다시 또 갈아타야 한다. 
이 얼마나 번거롭고 피곤한 여정인가?
청량리역에 접근하면서 애태운 것,
앞으로 교통편 갈아타면서 안절부절할 것.
이런 것들이 춘천마라톤에서는 어떤 결과로 나타날까?

하지만 나를 힐책하고 나 자신을 깎아내릴 때가
지금은 아니다.
아직은 춘천마라톤이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춘천마라톤 출발 시각에 늦은 것이아니라
단지 출발지에 30여분 늦게 도착할 뿐이다.
마라톤을 앞두고 나를 한껏 고양시켜야 할 터인데
열차 놓친 것 가지고 이렇게 나 자신을 힐책하면
마라톤 완주에 분명 지장이 생길 것이다.
여태껏 나는 얼마나 노력했던가?
반 년 전 부터 수시로 인천대공원을 달렸고
밤샘 편집으로 망가진 몸을 다시 추슬렀고
술 자리를 피하려고 애를 썼다.
어제 동문회 등산모임까지 뿌리치면서
오늘 기어이 마라톤 출발지로 가는 것이 아니던가?
이쯤만해도 나는 충분히 자랑스러운 사람이다.
지금부터는 또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내 온 몸과 마음을 채워야 한다.

도농역에서 내려 가평 목동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니나 다를까?
버스는 등산객들로 가득찼다. 
여기서부터 청평까지 40여분은 서서 가야한다.
무릎에 부담이 덜 가도록
손잡이에 매달려 가볍게 종아리운동을 하며
청평에 도착했다.
이틀 동안 대변을 보지 못한 게 은근히 걱정돼
1회용 휴지를 샀다. 
똥이 마렵다 싶으면 즉각 화장실로 달려가야 한다.
춘천행 직행 버스가 금방 도착했다.
이번엔 빈 자리가 제법 많다.
마라톤 행색을 한 사람들도 듬성듬성 눈에 띈다.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이수미가 부르는 <물새우는 강언덕>을 들으며
강촌의 강변을 달려 내려 간다.
멀리 의암댐이 보인다.
몇시간 뒤, 내가 저 앞의 신연교를 힘차게 달리고 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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