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이따금씩 아파트 주차장에서 마주치던 멧 비둘기가 있어요.
녀석은 사람들을 무서워 하지 않아서 아주 가까이 가도 잘 날아가지 않았는데요.
어제는 토요일이라 느지막히 아침을 먹고 늘 하던대로 뜀박질을 나갔습니다.
밤새 퍼붓던 늦장마가 잠시 뜸해진 틈을 타 5km 달리기 속도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인천대공원의 동물원 언덕에서 호숫가를 한바퀴 돌아 장수천을 따라
5km 골인지점까지 모처럼 전력질주 해봤습니다. 기록은 21분23초...
골인지점 50여m 전방에 장수교가 있는데요. 그 아래 조깅코스에 물이 넘쳐서
철퍼덕거리며 15m를 간신히 통과한 게 아쉽긴 하지만
5km를 21분대에 주파하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숨을 헐떡거리며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는데
몇발자국 앞에서 멧비둘기가 똥을 싸고 있습니다.
새 똥 싸는 모습이 이렇게 또렷하게 보이다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를 스쳤습니다.
자세히 보니 꽁무니 털이 다 빠졌네요.
날개 끄트머리도 모두 상했구요.
행색으로 봐선 며칠 굶은 것 같기도 하구요.
재빠르게 집에 와선 쌀을 한 웅큼 쥐고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 갔습니다.
이웃집 아저씨가 차 밑을 들여다 보며 난감해 합니다.
비둘기가 차 밑으로 들어가 옴쭉달싹 안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덩치도 작은 게 새끼인 거 같애요."
"밟혀 죽을 까봐. 차를 움직일 수도 없고..."
차 앞에다 쌀을 휙 뿌렸습니다.
다행히도 비둘기는 쌀알을 냉큼 쪼아먹기 시작하더니
슬금슬금 차밖으로 나옵니다.
"오래 못살 거 같애요. 뭐에 물렸는지 날지도 못하는데..."
아저씨는 혀를 끌끌 찹니다.
우리 아파트 15층에 5년째 함께 사는
마음씨 착한 이웃집 아저씨인데요.
비둘기가 차 밑에서 나오자 안심한 듯 차에 오르며
제게 말합니다.
"그냥 놔두면 고양이 한테 물려 죽든가 굶어 죽지 싶어요."
아프지 않게 슬그머니 잡으려 했지만
날개를 심하게 파닥입니다.
어디서 흘렀는지 운동복에 피가 뭍었습니다.
날개를 파닥이지 못하도록 고쳐 잡았습니다.
가만히 보니 왼쪽 다리에도 상처를 입었네요.
"아니, 그걸 왜 잡아가지고 들어 와."
마눌이 정색을 합니다.
옆집에 아이들도 있고 헌데 병이라도 옮기면 어쩌냐는 겁니다.
"일단 비가 그칠 때까지 베란다에 놔둬 보자."
"베란다는 안돼! 냄새 난단 말야."
결국 복도에다 별도의 비둘기 집을 만들어
장마가 끝날 때까지만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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