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단문 일기

부뚜막에서 꺼낸 운동화 20140330

새벽 잠결에 밭은기침소리가 들립니다.

어머니는 늘 부엌에 계셨지요.

깜깜한 아궁이에 불쏘시개를 넣고 콜록거리며 아침을 맞으셨습니다.

잠시 기침소리가 멎은 것을 보면

어머니는 아마도 기도를 올리고 계실 것입니다.

부뚜막에 정화수를 올려놓고 가족들의 건강을 빌었지요.

첫 새벽 맑은 물을 길어다가 조왕신에게 바치고

군에 간 형들을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따끈해진 아랫목 구들장에 늦잠이 달라붙을 즈음

어머니의 밥솥에서도 구수한 누룽지 냄새가 납니다.

 

이제 일어날 시간입니다.

문지방을 엉금엉금 기어 넘고 툇마루 깨를 더듬거립니다.

거기 선반아래 나란히 칫솔들이 걸려 있었지요.

어머니는 큰솥의 뚜껑을 열고 김이 무럭무럭 나는 세숫물을 바가지로 가득 퍼냅니다.

수건을 목에 걸고 칫솔을 입에 문 채 뒤꼍을 돌아 도랑물가로 갑니다.

막바지 겨울이 도랑물에 살짝 얼음을 얹어놓고 어디론가 숨었네요.

양은 대야에 도랑물을 반 바가지쯤 퍼 넣으면 세수하기 알맞은 물이 됩니다.

따듯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논두렁을 건너 온 겨울바람이 볼때기를 할퀴고 지납니다.

우선 한 움큼 물을 건져 얼굴에 끼얹습니다.

눈가에 붙어있던 마지막 잠이 밭고랑을 따라 저 만치 줄행랑을 칩니다.

세숫물과 겨울바람이 차례로 볼때기를 덥혔다 식혔다하면서

짧은 나의 아침이 시작됩니다.

밥 먹고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챙깁니다.

어머니의 정성은 도시락에 고스란히 담겨 책갈피에 끼워집니다.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오너라."

 

어머니는 김치가 가득 담긴 반찬통을 건넵니다.

마요네즈 병으로 만든 반찬 통.

국물이 새어 나올까 봐 그 마개를 비닐로 감쌌습니다.

며칠 전 어머니는 내 책상머리에서

귀퉁이가 퉁퉁 불어있는 국어책을 만지작거리셨었지요.

 

간밤에 내린 싸락눈이 봉당에서 회오리바람을 쫓아 이리저리 몰려다닙니다.

게으름뱅이 겨울이 심통을 부리는 중이지요.

양말을 껴 신기는 했지만 마루 끝에 걸린 발가락이 얼얼합니다.

어머니가 황급히 부엌에서 무엇인가를 들고 나옵니다.

밤새도록 부뚜막에 올려져있었던 운동화.

어머니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 살며시 운동화 아가미로 발을 디밉니다.

발끝에서부터 저릿한 온기가 온몸으로 번집니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에 가는 모습을 싸리문 밖에서 한동안 지켜보곤 하셨지요.

어서 다녀오라는 손짓을 하시면서 말입니다.

철둑을 넘어 긴양회다리에 오를 때까지 운동화에서 온기가 사그라지지 않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사랑 때문이었겠지요.

 

내 마음의 부뚜막에서 운동화을 꺼냅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그리고 한동안 저를 아껴 주셨던 선후배님들께

한 켤레씩 나눠드리고 싶습니다.

한 10여년 내 마음 속 부뚜막에서 은근하게 데워진 운동화.

그것으로 제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예전에 어머님이 그랬던 것처럼

진심으로 사랑하고 성원하며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