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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필통

100125 나의 맛 나의 색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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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약 색깔을 가졌다면 어떤 색깔일까?

내가 좋아하는 초록 빛깔일까?

아니면 싫어하는 빨강이나 회색일까?

나무들은 그 줄기와 잎을 통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다.

특히 가을이 되면 가지끝에 달린 잎사귀의 빛깔을 바꿔서

제각각 노란색 은행나무, 빨간색 단풍나무, 누런색 버즘나무가 된다.

같은 느티나무라도 어떤 것은 빨간색,

어떤 것은 노란색을 띠기도 한다.

나뭇잎 한잎 한잎을 곱게 물들여서

나무 전체를 때깔 곱게 치장하는 나무가 있는가하면

어떤 나무는 이른 가을부터 시든 낙엽을 뿌려대더니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볼품없이 서있는 것도 있다.

 

사실 색이나 빛깔은 객관적이고 외향적인 특징을 가진다.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이 색깔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스스로 내보이고 싶은 색깔이 따로 있어도

남들이 어떻 색깔로 평가하느냐에 따라 그 색깔이 특정된다.

수 많은 사람들이 5월의 나뭇잎을 초록이라고 특정했기때문에

그 것이 초록으로 특정됐다는 얘기다.

 

사람들은 또 어떤가?

어떤 이는 늘 주변에 희망이 되고 행복을 선사하며 살아가지만

어떤 이는 누구에겐가 늘 걱정을 끼치고 짐이 되어 살아간다.

먼저 사람은 반짝 반짝 빛나는 밝은 색깔일 것이고

나중 사람은 칙칙하고 어두운 색깔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늘 활달하고 정열적으로 자기 삶을 개척하지만

어떤 사람은 늘 시간에 쫒기면서 허둥지둥 산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차분하고 조화롭게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간다.

빛깔로 치자면

처음의 사람은 채도가 높은 단풍잎이나 은행잎이 될 것이고

나중 사람은 누리끼리한 낙엽이 아닐까.

그리고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느티나무나 감나무의 가을 잎 처럼 은은한 진홍색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색깔일까?

재물은 많지 않으나 재능은 많은 편이다.

자립심과 자존감이 강한 편이어서

남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걱정을 끼치는 일은 많지 않다. 

주변에 기쁨을 주고 행복을 전파하려 애를 쓰기도 한다.

그러니 나의 색깔은 밝은 것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내 삶의 방식을 특정짓기 어려울 때도 많다.

때로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살지만

때로는 삶에 지쳐 갈팡질팡하기도 한다.

대체적으로 조화롭고 무난한 편이다.

약간 특이하다 할 정도의 인생을 살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 나의 색깔은

밝으면서도 채도가 높지 않은, 은은한 색깔일 것 같다.

초록색이나 분홍색, 아니면 밝은 갈색.

사실 내가 좋아하는 빛깔은 연초록이다.

긴 겨울을 털어낸 숲에서 

가지 끝에 매달려 봄볕을 쪼이는 싱싱한 초록색. 

4월말이나 5월초 쯤에 볼 수 있는 연초록 빛깔을 나는 몹시도 좋아한다.

5월이 지나 녹음이 짙어지면

모든 나뭇잎들이 진한 초록색을 띠기 때문에

나의 색깔은 뭍혀버린다.

 

내가 만약 맛을 가졌다면

어떤 맛이 가장 강할까? 

색이나 빛이 다분히 외향적이고 공개적이라면

맛과 냄새는 주관적이고 내향적인 형질을 가졌다.

때문에 나의 맛과 냄새 역시

느끼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데...

일과 사업문제로 나와 부딛히는 사람들은

나를 철저하고 깔끔하다할 것이다.

맛으로 치자면 매콤한 콩나물해장국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친구들은 나에게 어떤 맛이 있다고 느끼려나?

다양하고 공평하게 친구를 사귀려고 애를 쓴다.

진솔하고 깊게 사귄 친구들을 좋아한다.

원칙에 어긋남이 없는 범생이 스타일이다.

이 세가지 특징에 딱 들어 맞는 음식은 없지만

구수한 된장찌개에 가깝다고나 할까.

하지만 늘 집에서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가족들은

나를 일벌레, 아니면 방관자적 가장으로 규정하지 않을까 싶다.

자상하고 품위있는 아빠,

유머있고 뚝심 강한 남편.

뭐 이런 이미지 보다는

늘 일에 쫒기는 아빠,

살갑고 다정하지만 무능한 남편으로 자리매김했을 것 같다.

가족들에게는 담백한 무우국 맛이라고 해야 할라나?

 

나에게서는 어떤 냄새가 날까?

향기가 날까, 똥냄새가 날까?

향기가 난다면 아카시꽃 처럼 찐하고 독한 향기일까.

아니면 수수꽃다리나 밤꽃 처럼 은은한 향기일까?

소시민으로서 누구못지 않게 정직하게 살았으니

똥냄새가 날리는 없다.

남을 해코지하거나 모함하지도 않았으니 구린내가 날리도 없다.

다만 어떤 향기가 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어쩌면 내가 두리뭉실하고 유연한 사고방식을 가져서

아무런 냄새도 않날지 모른다.

냄새가 없는 사람은 멋이 없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그저 맹탕같은 사람, 그래서 어떤 때는 그의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사람...

가끔씩은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느낄 때가 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한결같고 꾸준하다는 평가를 바탕으로

누군가가 나에게서

수수꽃다리나 달맞이꽃 냄새가 난다고 해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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