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전철로 출퇴근 하는 나는
이따금씩 송내역에서 고민에 빠집니다.
급행열차를 탈까?
완행열차를 탈까?
급행은 도중에 몇몇 정거장을 서지 않고 통과하기 때문에
여의도까지 출근 시간을 15분 정도 단축시켜 줍니다.
하지만 만원 전철에서 한 30여 분
사람에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야하지요.
정거장에 설 때마다 무지막지하게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과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여야 하구요.
늘 카메라 가방을 메고 타야 하는 나로서는
이런 신경전이 여간 괴로운 게 아닙니다.
어떤 날은 승객들이 하도 많아서
카메라 가방을 선반에 올리지도 못합니다.
카메라가 혹시 승객들 틈바구니에서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15분 정도 절약(?)하려면
그 정도의 불편은 감내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역시 출근 전철은 초만원입니다.
성우와의 녹음 약속시간에 쫓기고 있던 터라
일단 승객들 틈에 끼어 급행전철에 올랐습니다.
잠시후 카메라 가방이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아이구, 아저씨...가방 좀 치워 주세여."
"미안합니다, 아가씨...이게 사람들 틈에 끼여 가지고 옴쭉달싹 않..."
"힘 뒀다 뭐해요. 빨리 빼 주세요. 허리 아프단 말이에요!"
목소리도 앙칼지거니와 몸짓도 매몰찹니다.
카메라 가방을 처치하지 않으면 뺨이라도 때릴 기셉니다.
초만원 전철에선 어쩔 수 없는 일인데...
결국 다음 정거장인 부천역에서
떠밀리다시피 내렸습니다.
"내가 오늘 아침 반드시 급행열차를 타야만 했나?"
겨우 정신을 수습해서 곰곰히 따져 봅니다.
출근 시간이 15분 정도 더 걸리는 것이 아깝다면서도
집에서 출발하기 전에는 마냥 꾸물거리고...
출근하고 나서 이래저래 빈둥대며 보내는 시간은 또 얼마일까?
출근 시간 15분을 아쉬워 할 정도로
나머지 시간을 밀도 있게 보냈던가?
맞습니다.
나는 조급증에 걸려 있는 "바쁘다" 족입니다.
평상시에는 빈둥 거리고
마감 시간에 닥치면 허둥댑니다.
빠듯한 15분을 벌기 위해
헐렁한 시간은 마냥 낭비하는
"바쁘다, 바뻐."족일 뿐입니다.
부천역 역홈에서 맨 앞쪽으로 터덜터덜 걸었습니다.
사람마다 열차를 타는 기준이 있는데
나는 사람이 될 수 있으면 적을 것 같은 칸에 탑니다.
맨 앞 또는 맨 뒤칸이 그렇습니다.
"지금 동두천, 동두천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완행전철이 금방 뒤따라 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완행열차의 첫번째 칸은 넉넉합니다.
군데군데 빈 자리까지 보입니다.
요행히도 그 중에 하나 내 차지가 되었는데
가방을 선반에 올리고 메모지를 꺼내 들었습니다.
신길역 까지는 대략 25분쯤 걸립니다.
그동안 성우 원고를 쓰면서 갈 요량입니다.
마음이 편안해 졌습니다.
사람에 부대끼지 않아도
가방 걱정을 붙들어 매도 되니까...
게다가 자리에 앉아 원고까지 쓸 수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요?
여의도 녹음실에는 약속시간 5분전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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