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녀석 카메라에 호기심을 보이네요.
카메라 가방 수색도 하구요. 피잣을 냉큼 받아 먹고...참 귀엽죠?
오리엔티어링 가족들을 따라서 남이섬에 갔습니다.
남이섬은 북한강에 떠있는 작은 섬.
1060년대 초, 강 하류에 청평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섬이라네요.
10여년 전 "겨울연가" 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뒤
그 촬영지로 각광을 받아 온 곳이지요.
드라마가 일본에서도 방송되고 중국에서도 전파를 타면서
섬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외국인들이 많다네요.
드라마에 등장했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엔 오늘도 연인들의 추억이 주렁주렁 매달리고
한 여름 아침 햇살은 뭇 열매들을 익히느라 분주합니다.
단풍잎 위에 얹힌 아침 햇살을 보면 가을이 멀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바알갛고 노오란 단풍터널을 보러 늦가을 쯤 다시한번 와보고 싶네요.
물배추 분수에선 남이섬의 한 여름 뙤약 볕이
시원하게 샤워를 즐깁니다.
아침 나절엔 오리엔티어링을 즐기는 사람들을 쫓아서 남이섬 구석구석을
열심히 달렸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섬의 최북단에서 최남단까지...
남이섬에서의 특별한 만남은 점심시간에 성사 됐습니다.
잣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도시락을 먹는 데 어디선가 "툭"하고 잣송이가 떨어집니다.
곧 바로 청설모의 짓이라는 걸 알아챘습니다.
청설모의 별명이 잣도둑이라는 거 아시나요?
잣을 주워 카메라 가방에 넣었습니다.
잠시후, 이 녀석이 벤치 앞에 나타나서는 나에게 잣을 내놓으라는 표정을 짓습니다.
아주 억울하다는 표정입니다.
잣송이를 내 밀었더니 냉큼 달라 붙어 잣 알갱이를 빼앗아 갑니다.
또 다른 청설모가 나타나자 저 멀리 좇아 버리고 다시 와서는
잣송이를 내달라는 시늉을 합니다.
"그 녀석들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아요. 남이섬의 잣은 모조리 그 놈들이 주인이지요."
지나가던 남이섬 할아버지가 같이 놀면 재미있을 꺼라는 귀띔을 합니다.
잣 알갱이를 앞 이빨로 뜯어 내더니 야금야금 오물오물 맛있게도 먹습니다.
사실 제가 청설모를 처음 알게 된 것 10여년 전 모 방송사의 교양다큐멘터리를 촬영할 때였습니다.
경기도 가평의 한 잣마을에서 대대적인 청설모 퇴치 활동이 벌어지고 있었는데요.
잣나무에 올무를 둘러서 잡고, 총으로 쏘아서 잡고...
"이 놈 한마리가 1년에 잣 한가마니를 까먹어요."
"그러니 우리 마을에선 웬수나 다름없지요."
불쌍한 녀석들, 하필이면 잣마을에서 태어났누?
하지만 남이섬에서 만난 이 녀석,
장난 끼가 철철 넘치고 배짱도 두둑합니다.
카메라를 코앞에 들이대자
이렇게 멋진 포즈까지 취해 주네요.
귀엽지요?
가을에 남이섬에 갈 일 있으시면
피잣(껍질이 있는 잣 알갱이)을 한 웅큼 사가지고 가세요.
이 놈들이 반가워 할 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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